2월에 본 영화


2월에 본 영화를 정리.

시민케인
예전에 꽤 자주 가던 단골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단골이라고 해도 주인아저씨와 별 다른 대화가 없어서 내가 카운터에서 묵묵하게 테이프 케이스를 밀어놓으면 주인아저씨는 알맹이를 꺼내서 빨간 불빛이 나오는 기계로 체크를 하고 검정색 비닐봉지에 그것을 넣어주는 일만 매번 반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아저씨가 느닷없이 “다음주에 시민케인 나와요.”라고 말을 던지는 것이다. 나름대로 내가 반가워하길 기대하는 눈치였는데 참 생뚱맞기도 하고 고마웠다. 난 그냥 “아..예.. 그게 다음주였네요”라고 대답하면서 어설프게 호응을 해줬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아저씨가 평소에 나를 어떤 취향이라 판단했는지 생각해보니 뭔가 뿌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 꽤 귀찮은 일이 하나 생겼다고도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이후부터는 가끔씩 빌려보던 국산 에로 비디오는 꼭 다른 곳에서 빌려야 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시민 케인’을 보고 난 이후 두 번째로 봤지만, 여전히 머리가 공허하기만 했다. 그래서 로저 에버트의 코멘터리와 함께 다시 보기를 시작했는데 이건 꽤 흥미 있었다. 왜 대단한 것인지, 위대한 것인지에 대해 장면장면 설명을 듣는다고나 할까. 하지만 반쯤 보다가 왠지 EBS의 과외방송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 꺼버렸다. 그래, 딮포커스도 좋고, 플레쉬 백도 좋은데 그걸로 왜 영화 역사의 최고봉에 서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구나.

우주여행캠프
벽에 똥칠하기 전에 달나라나 한번 밟아봐야 될낀데..

시실리2km
‘복합장르’라는 것은 제작사의 성패를 떠나서 관객에게도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실용성과 디자인을 겸비한 ‘향기나는 야광 콘돔’을 구매하느냐, 부질없는 ‘치약달린 구두주걱’을 구매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의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실리 2km는 향기가 날 뿐만 아니라 오돌토돌한 돌기를 겸비한 고급형 칼라 야광 콘돔이었다. 단, 향기가 좀 더 진하게 나고, 야광불빛이 더 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김형준의 묘’는 신선했다.

쉘부르의 우산
저질스런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내게도 의외로 제법 순수한 취향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뮤지컬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뮤지컬 영화는 대개 몰두하지 않아도 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음악을 들으면서 화려한 의상이나 소품들을 보기에 좋다. 이 영화는 대사의 100%가 노래로 구성되어서 집중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중간에 일어나 맨손체조를 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냈다. 영화에 나오는 화려한 벽지들이 늠후늠후 예뻐서 침을 꼴깍. 빨리 돈 벌어서 예쁜 벽지를 쳐 바른 집에 살아야지.

아일랜드
이렇게 허풍 심하고, 터질 때 터져주고, 달릴 때 달려주는 흥미진진한 영화가 세계적인 흥행부진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매트릭스3
지난 달에 녹화해 두었던 HD방송분을 보았다. 센티널과의 징글징글한 대전부터 스미스씨와의 구라 가득한 결투로 이어지는 쉴새없는 전개가 온몸을 전율케 했다. 정말이지 매트릭스 시리즈는 표창장받는 순이만큼이나 착하고 슬기로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브이 포 벤데타’가 기대된다.

카페 뤼미에르
오마주라고 해놓고 이렇게 똑같이 만들어버리면 어떡하나. 무서운 사람 같으니.

무사
전작들로 인해 김성수 감독의 영화는 내 비위에 맞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개봉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무사를 보고나서는 선입견을 가진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구로사와 아키라보다 부족하다 한들, 셈 패킨파에 못 미친다고 한들 이 정도를 연출해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우리나라에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환호했다. 오야르!
그러고보니 김성수 감독님은 ‘영어완전정복’에서 조선땅의 개탄스런 영어만능주의를 고발했던 착한 감독이로구나. 당신, 정말 맘에 들었어요!
- 토익 700점 짜리 올림.

좋은걸 어떡해
오드리 토투는 톡톡 튀고 마냥 귀엽구나. 같이 데리고 살믄 아주 피곤할 것 같다만.

주홍글씨
미제의 사건속인, 거울 안의 욕망인 성현아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 이은주와 한석규를 함께 발가벗겨서 자동차 트렁크 안으로 밀어 넣었는데, 억지스런 느낌이 강하고 트렁크 안에서의 대화와 반전이 유치한 듯하여 감흥을 받지 못했다. 굳이 트렁크가 아니었어도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TV에서 하는 걸 봤는데,(HD였다구!) 원판에서도 성현아의 찌찌가 안나오는지 궁금하다.
by 지루박 | 2006/03/03 01:27 | 울지마 영화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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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조나쓰 at 2006/03/03 07:07
저는 그날 느즈막히 쇼핑 나섰다가 딱 평가전 시간 맞춰서 집에 들어왔답니다... 그래도 도마 안중근은 좀..ㅡㅡ;;
오.. 그러고 보니.. 어제는 무슨 바람인지 평일 저녁 퇴근길에 광식이 동생 광태를 빌려 보았는데요,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Commented by 마쉬멜로우 at 2006/03/03 10:27
드디어 보셨군요. 카페 뤼미에르. 괜히 제가 다 뿌듯합니다. ^^
Commented by 나니 at 2006/03/03 11:04
도마 안중근이라는 영화는 왜 영화인지 모르겠어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6/03/03 11:14
[시민 케인]은 기술적인 성취도는 뛰어나지만, 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가 별 매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개봉 당시, 허스트의 방해공작이 없었어도 흥행성적이 크게 바뀌었을 것 같진 않아요.
[아일랜드]를 비롯한 마이클 베이의 영화는 제 취향은 아니예요. (너무 함부로 사람들을 죽여서요.)
막판에 흑인 용병대장은 왜 개심했는 지 알 수 없군요. (박사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인간인 데...)
Commented by aqpppp at 2006/03/03 12:57
ㅎㅎ 가랭이 찌자지긋습니다. ^^
중간중간 맨손체조하면서 위기를 극복하신 쉘부르의 우산과
주홍글씨만이 겨우 눈대충으로 훎어보았습니다만..

대략 일치하는 베란다에 태극기 건게 찜찜한 2006년의 삼일절이었습니다.
Commented by 푸무클 at 2006/03/03 14:34
전.. 주홍글씨 괜히 봤...
보고 나서 막 속이 니글니글.....
Commented by 윤쌤 at 2006/03/03 15:59
앙고라 장갑 ㅋㅋ 하여튼 좀 추었죠
Commented by 아우라 at 2006/03/04 00:34
앗! 눈에 확 들어오는 영화하나...시실리....ㅡ.ㅡ;;
Commented by 아임낫네티즌 at 2006/03/04 00:40
직업이 직업인지라..어느순간부터 공부하듯 혹은 경쟁하듯 보곤 했던 영화들...왜 오손웰스가 천재고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대단한지 도대체가 졸려죽겟는데 말이지..라고 참으며 보던 영화들. 왜 그리 다 봐야만 한다고 생각 햇엇을까요? 무슨 씨네마떼크를 창설 할것도 아니고..ㅋㅋ 3.1절은...추위에 떠는 앙고라 선수들이 안쓰러웟을 뿐..눈발 날리는 축구장. 앙고라 선수들 눈 첨 보지 안앗을까 걱정..ㅋㅋ
Commented by PETER at 2006/03/04 03:40
씨쥐비 인디영화관에서 본 카페 뤼미에르...
한 10명 정도 관객이서 같이 봤는데 저빼고 다 자서 놀랬어요...;;;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3/04 10:53
조나쓰님/ 저도 꼭 봐야겠네요. 광식이동생광태. 왠지 허접해서 대단히 재밌는 장면이 나올 것 같은 영화 있잖습니까, 그런 영화가 ‘도마 안중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마쉬멜로우님/ 카페 뤼미에르를 개봉한다는 얘기 들었을 때부터 극장을 찾고 싶었는데 요쪽 강원도쪽은 기회가 안 닿더군요. 디비디 출시소식 듣고 프리오더해서 사버렸습니다.

나니님/ 그래도 유오성 나오는데.. 4년 전 월드컵 우려먹는 특집방송 보는 것보다야 낫겠지 싶었어요.

marlowe님/ 예전에 ‘키노’에선가 시민 케인을 ‘저주받은 걸작’에 올려놓은 걸 봤는데 뭘 저주 받았다는 건지 읽어보다가 피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쪽 글쟁이들은 지네들끼리 사용하는 단어가 왜 그리 일률적인지 모르겠어요. 아일랜드는 저처럼 오장육부를 풀어헤치고 편하게 감상하시면 아무런 불만 없이...쿨럭!

aqpppp님/ 어이쿠, 아닙니다요. 가랑이 찢어지실 것까지야... 근데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카메라 기종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3/04 10:53
푸무클님/ 저도 그렇게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인지 사전 정보 없이 보다가 좀 놀랬습니다.

윤쌤님/ 열대지방 애들을 냉대지방에 데려와서 로마 전투장 같은 곳에서 5만명 모아놓고 위압감을 주는 모습을 보니 축구 무관심자의 입장에선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났습니다.

아우라님/ 헙!!!!! 저 ‘시실리 2km’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제 평생 이런 멋진 영화 다시 안나올 것 같아요~ 아하하하...^^;;

아임낫네티즌님/ 직업이 궁금해지는데요.. 저도 한때 의무감에 사로잡혀 이른바 명작들을 폭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보고나면 어디서 주워들은 단어들 조합해서 글도 써보고 말이죠...하하. 자기 취향 따라, 기분 따라 보는 게 제일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PETER님/ 제가 오즈 영화를 워낙에 좋아해서 저 영화만은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쳤어요. 원래 템포 느린 영화는 보기 전에 잠을 푹 자두고 보러가야되는데.. 잠자기 좋은 영화죠.^^
Commented by aqpppp at 2006/03/04 13:47
어이쿠,,카메라 기종을 물어보심은 삼월의 지름에 포함되시는것이온지..요즘은 사진 거의 못찍고
제블로그에 있는 지난 사진은 올림푸스 뮤30시리즈 이름하야 똑딱이 카메라시절 찍은 사진일걸요.- 지금 지루박님 카메라랑 엇비슷하다고 보심 되요

그리하야 좀더 나은 카메라가 갖고 잡아 지금의 미놀타 디미지A2로 업그레이드 하였사오나(흑흑 눈물어린 사연두 있습니다)
주변인의 태클로 사진 거의 못 찍고 있지요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일체형 그니까 바디 렌즈 분리되지 않은 일체형 모델중에 두번째로 조은 카메라라고 보면 됩니다)
이그 사진 못 찍는다는 압박들어오겠네요 ^^

모름지기 참 사내란 아내의 고상한(ㅡ.ㅡ) 취미생활에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는 지론을 끝으로 즐거운 주말 되십시욧
Commented by EYES at 2006/03/05 01:24
삼일절 : 월드컵 100일전
씁쓸했죠...?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3/05 13:04
aqpppp님/ 같은 똑딱이를 써도 사진의 질이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건... (좌절)
전 사진 공부도 안하지만 내공도 쌓이지 않아서 도저히 기변할 생각을 않고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EYES님/ 월드컵 기간중의 시청률과 광고료 확보를 위한 것이겠지만 너무하다 싶었습니다. 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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