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본 영화(1)
(나도 허전해)

로스트보이
내가 어렸을 때 싫어하는 외국 배우가 두 사람 있었는데, 한 사람은 ‘코리 펠드만’이고 다른 한사람은 ‘코리 하임’이었다. 당시 청춘스타로 인기를 누렸던 이 두 사람을 유독 싫어했던 이유는 ‘외모’ 때문이었다. 길게 기른 뒷머리와 염색, 그리고 살짝 볶은 핑클 파마는 당대 우리나라 양아치들의 인기 아이템이었는데 이들은 전형적인 양아치 스타일을 즐겨했을 뿐만 아니라 B급 배우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까닭에 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있자면 왠지 ‘돈 얼마 있냐?’하고 스크린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게다가 감독 조엘 슈마허에서 풍기는 약간의 싸구려 이미지가 합쳐지면서 이 영화는 돈을 받더라도 보고 싶지 않은 영화로 기억되어 있었다.

엉성하면서도 화끈한 게 보고 싶어서 집에 있던 로스트 보이의 테잎을 넣었다. 이제 보니 코리 펠드만과 코리 하임은 귀엽기만 하다. 그들은 아직 80년대에 머물러 있는데 나는 나이를 쳐먹었으니 맞짱 떠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엘 슈마허는 흡혈귀 이야기를 환상적이면서도 박진감 있게 그리고 코믹하게 그렸다. 양아치 대장으로 나오다가 흡혈귀임이 밝혀지는 키퍼 서덜랜드의 옛 모습도 멋지다.

사이드웨이
은하철도999를 보고 나면 라면이 먹고 싶어지고,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나면 미다래의 아카시아 셋트 라도 꼭 먹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와인 한잔 시원하게 먹었더라면 좋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을 했다. 폭탄주도 미묘한 맛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떤 술이든 마다 않고 좋아하지만 와인만큼은 당췌 친해지기 어려운 종목이다. 어떤 맛을 ‘맛있다’라 표현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 종목. 와인 바에서 멋지구리한 와인 한병 시켜놓고 홀짝거리는 것도 제법 뽀대날 것도 같은데 말이지.

하지만 역시 나는 와인바 보단 섹시바!

스티브지소와의 해저생활
물론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답답해진다. 상징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고, 그 오색찬란한 셋트와 인물 구성이며, 대사 하나에도 무언가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짧은 영어 실력으론 이해하기 힘든 뭐 그런 것들.

역시 공부 못하는 인간은 영화보기도 힘들다. 피곤한데.

브로크백 마운틴
지방 소도시에서 산 지 이제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대도시에서만 줄곧 살아오다가 인구 30만도 안되는 지방도시에 처음 살아보니 우리나라의 서울의 문화 집중화는 심각한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 이 강원도의 작은 도시는 단일 상영관이 4개, 작년 말부터 멀티플렉스가 생겨서 스크린수가 8개가 되었건만(덕분에 5개월도 안되서 단관이 2개나 사라졌다. 이제 2+6개)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여전히 좁다.
스크린 쿼터의 대안으로 얘기하는 예술영화 전용관 건립 같은 건 지방 소도시에선 환상에 가까운 얘기다. 예술영화는 고사하고 와이드 릴리즈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찰리의 초콜렛 공장이나 유령신부, 브로크백 마운틴 정도도 개봉하지 않는 게 지방 소도시의 현실이다. 스크린 쿼터 문제와 별개로 배급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해법과 담론들이 지나치게 서울 위주로 이야기되고 있는 건 언제나 불만이다. 그놈의 예술영화 전용관 얘긴 이제 좀 그만하자고.

원래 애정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편이 못되서 쉽게 얘기하기가 좀 그렇다. 애초에 제이크 질렌할이나 히스 레저에 매력을 느낀 적이 눈꼽만큼도 없었던 데다, 여느 애정영화에서나 나오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작은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흥미가 없는 편이다. 나처럼 감정이 메마른 인간이 이렇게 세밀하고 간지러운 애정영화를 감내해 내긴 힘들다. 그렇다고 카우보이 문화에 향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안 미안.

글래디에이터
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해, 사랑을 받지 못해, 아버지를 죽이고야마는 ‘코모두스’의 설정이라니. 예전에 볼 때는 영웅 막시무스를 중심으로밖에 보질 못했었는데 지금 보니 코모두스라는 인물을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면서까지 만들어 낸 게 재미있다. 영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악인의 이미지론 평면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매력적인 설정이다.

근데 조아퀸 피닉스, 와킨 피닉스, 호아킨 피닉스... 도대체 이 사람의 이름은 뭐냐?
한때 야구게시판에서 유행하던 푸홀스-푸졸스-푸욜스 논쟁이 생각나는구나.

공포의 계단
원제는 ‘The people under the stair'. 계단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출시 제목은 뜬금없이 계단을 공포감을 주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인공이 흑인 꼬마 아이라는 것도, 집세를 낼 수 없어 쫓겨날 처지에 있는 이들이 건물주의 집을 턴 다는 설정도, 지하에 감금되어 있던 좀비(?)들이 봉기를 한다는 것도, 집이 폭파되며 돈이 휘날리면 동네 주민들에 나눠지는 것도, 영화평 쓰기 좋아하는 아해들에게 숟가락으로 밥 떠먹여주는 인심 좋은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악인들의 지루한 기다림, 얼굴에 붙은 파리를 쫒는 아저씨1, 으아! 머리위에서 떨어지는 녹물을 피하는 아저씨2, 으아! 끽끽거리는 풍차 소리, 으아! 하모니카를 불며 서 있는 찰스 브론슨, 으아! 탕탕탕, 으아!

둘이 보다 하나가 사정해도 모르는 이렇게 황홀한 서부극은 처음일세.

스파이더맨2
1탄은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2탄은 1탄의 패턴 너무 그대로라 흥미가 좀 떨어졌다. 이제 스파이더 맨의 정체가 홀라당 까발려진 이상 3탄은 어떻게 전개될지, 두둥~

난 해리역으로 나오는 친구가 스타워즈에서 아나킨역의 ‘헤이든 크리스텐슨’인지 알았다. 코쟁이들은 얼굴이 다 똑같이 생겨서 도저히 구분이 안된다. 촌놈 같으니...

럼블 피쉬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맷 딜런, 미키 루크, 다이안 레인 주연, 게다가 머리숱이 풍성한 젊은 시절의 니콜라스 케이지. 이것만으로도 볼거리가 넘친다.
럼블 피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봐도 결투 본능을 발휘한다고 한다는 투어, 즉 싸움 물고기. 영웅이 되고 싶고, 혈기를 분출하고 싶은 젊은이들의 본능을 그려냈다. 후까시 가득하고, 스타일 가득하다.

도니 다코
저번 TV 방영 시에도 기회를 놓치고, 할인행사도 시기를 놓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에 때맞춰 TV에서 다시 해줬다. 브로크 백 마운틴의 개봉과 맞춰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가 아닐까.

녹화해 둔 걸 다 보고나서 처음부터 다시 듬성듬성 돌려봤는데, 고개가 끄덕끄덕. 나름대로 계산이 잘 된 것 같다. 뚱땡이 드류 베리모어, 촌스런 패트릭 스웨이지에 눈물이 천지연폭포. 알토미디어의 감독판 출시소식은 정말 빅뉴스고, 두말할 필요 없이 이건 프리오더.(자기, 미안)

제이크 질렌홀, 제이크 질렌할.... 대체 얘도 이름이 뭐냐. 염병할...


일반적인 ‘영화 리뷰’를 기대하고 방문한 사람들에겐 아주 죄송할 따름인 3월에 본 영화 (2)는 다음에.
by 지루박 | 2006/03/28 11:34 | 울지마 영화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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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arlowe at 2006/03/28 12:15
대부분의 영화에 대해 저와 감상이 비슷하시네요.
[글래디에이터]는 소피아 로렌, 스티븐 보이드, 크리스토퍼 플러머 주연의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보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코모두스가 왜 망나니가 되었는 지, 더 자세히 나와있어요.
Joaquin Phoenix는 '와킨 피닉스'로 읽으시면 됩니다. 형 리버 피닉스가 일찍 죽어서, 동생이란 느낌이 안 들어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3/28 12:44
로스트보이, 도니다코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영화들입니다.
도니다코는 프리오더죠. 당연히.
Commented by 비리 at 2006/03/28 13:44
눈썹이 없어서 클릭해보니 눈썹이 있었어...-_-;;;웬지 이것....낚시의일종인가요..(뜬금없는소리)
후후후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3/28 13:53
marlowe님/ 맞아요, 맞아. 저도 '와킨'피닉스가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들어요. 생김새가 왠지 형같지 않나요? '로마제국의 멸망'은 marlowe님의 추천작이니 꼭 봐야겠군요.

ArborDay님/ 도니다코, 이번 TV에서 방영할 때 은근히 HD이길 바랬는데 아니더군요. '수렁에서 건진 알토' 덕분에 당분간 즐거운 일이 많이 생길것 같아요. ArborDay님 블로그 잘 보고 있습니다.^^

비리님/ 예전에 쓰던 스킨에는 눈썹이 나왔는데 스킨을 바꾸고 이미지 크기가 작아지니 눈썹만 없어지더군요. 그래서 낚시라기 보단 신기해스....
Commented by 혜영양 at 2006/03/28 14:26
오홋~! 신기하네요. 눈썹이.... 으흐흐흐~! ^^;;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3/28 21:50
테두리 선들과 눈썹의 선굵기가 같은데 크기가 줄어들면 저 눈썹만 안보이더군요. 신기;;
Commented by 꿈의대화 at 2006/03/28 22:32
제 여동생은 "브로크백 후장 마운틴"이라 부르더군요;; (뭐 그냥 농담으로...;;)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3/28 22:51
헉.... 위험한 덧글...거기다 위험한 여동생...
전 그 장면에서 바로 애정행각을 할 줄은 몰랐어요. 너무 진도가 빨라서.. 사전정보 없이 봤다가 좀 놀랐죠.(좋았죠)
Commented by PETER at 2006/03/29 00:48
지루박님 댓글 다 웃겨 ㅠ.ㅠ
스파이더맨2//저도 1편을 넘 재밌게 봤다가 OTL 3편은 다시 기대중.. 무엇보다 주인공이름과 동명이라..:-)
브로크백//꿈의대화님 댓글 완전 과격해요 ㅠ.ㅠㅋㅋ 웃기긴 하다만-_-;; 저도 애정영화를 흥미있게 보는 편은 아니지만 브로크백은 참 좋았어요. 느릿느릿. 조용조용. 이안이니까 좋았던거 같기도...

스크린쿼터 그만 얘기하고 저도 배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윙걸즈 상영관 수 보고 놀랐다는...
꽤 많을줄 알았는데--;;청춘만화 내리고 딴영화들 올려-_-;;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3/29 10:14
이동네는 스윙걸즈 개봉도 안합니다. 예상했었지만.
어쩔수없이 또 디비디 구입입니다. 가까운 대여점엔 블록버스터급 아니면 디비디는 입고하지도 않아요.
작은 동네에서 작은 영화가 개봉되지 못하는게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좀 심할 정도의 힘있는 손의 존재가 보이더군요.
Commented by 베레따 at 2006/03/30 02:41
코리 하임은 징그럽게 싫어했는데, 코리 펠드만은 쬐금 귀여워했어요. 다 스탠바이미 덕이었겠지만.

광역시라는 대전도 사정이 그리 나은 거 같지 않더군요. 슬픈 현실. 그 손모가지를 비틀어주고 싶어요..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3/30 11:09
전 구니스에서만 빼고 완전 비호감이었습니다. 나중에 13일의 금요일에도 나온 단 걸 알았을 땐, 으악!
대전도 사정이 안좋군요. 역시 공연이나 영화 보기엔 서울만한 곳이 없다는 결론이네요. 아, 서러워.
Commented by punctual at 2006/03/30 11:41
우리나라의 서울의 문화 집중화는 심각한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 이걸 메워주는게..DVD, 인터넷 그리고 택배였습니다. ^^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3/30 15:19
덕분에 그래스물넷의 택배회사 아저씨와 친해졌습니다. 아는사람 몇명 안되는 동네에서 한명 늘었어요.
Commented by Lucifer at 2006/04/29 04:31
정말 애교 넘치는 포스팅인걸요? ^^ 나도 허전해, 와 자기, 미안...에서 한참 웃었어요 ^^ 여전하십니다아.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4/30 11:31
히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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