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본 영화
(나중에)


레전드 오브 리타

폴커 슐렌도르프의 '양철북'을 본 게 고등학교 1학년 땐가 그랬다. 원작을 읽은 적도 없거니와 별 사전정보도 없이 본 거라 그 내용에 엄청 충격을 먹었다. 그래서 이 양반의 이름만 들어도 나중에 덜덜 떨 정도가 되었다.
3년 전인가전에 그가 감독한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았으니 이번이 내가 본 그의 3번째 영화가 되는 셈이다. 통일 이전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 과정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자기 스스로의 신념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이념적 선택에 동참하다가 씻을 수 없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살게 되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혹시 이 여자, 충격 받고 성장이 멈춰 버리는게 아닐까 하고 영화보면서 덜덜덜 떨었다.

EBS에서 밤 12시 넘어서 한 영환데 이 정도 진지한 내용에, 그 정도의 시간이면 찌찌에 유유빛 뺑끼칠 하는 짓거리는 안해도 되질 않나.

보통 사람들

아주 오래전에 즐겨보던 인기드라마 중에 ‘보통 사람들’이라고 있었다. 당시에 최고의 인기가 있었던 이 드라마의 출연진은 황정순, 송재호, 한진희, 이영하, 강석우, 정한용, 황정아, 유지인, 금보라, 조용원 등으로 그야말로 올스타 군단이었다. 할머니, 아들, 며느리가 한집에서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었으며, 핵가족화(국민학교 때 주관식문제 단골 답)가 진행되던 당시에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대가족의 가치와 향수를 자극하던 드라마였다.

80년대 우리나라의 일일연속극 '보통사람들'이 현대화, 핵가족화가 진행되던 시기의 고부간의 갈등, 며느리간 갈등, 서양문화에 대한 생소함(아, 조용원, 안나...) 같은 걸 보여줬던 것 같은데 80년대 미국의 '보통 사람들'은 가족 내의 소통과 이해의 부재, 가족의 허상을 이야기 한다.

이 영화 개봉 이후 미국대선에서 레이건은 ‘BACK TO BASICS'를 외치며 도덕성 회복과 정부개입의 축소를 주장하는 보수적 정책을 주장했고, 우리는 드라마 종영 몇 년 이후 드디어 ‘보통 사람’을 임금님으로 영접하게 되었다. 그 뒤 백성들은 고생을 곱빼기로 했다.

오만과 편견

난 여대생 취향의 노래나 영화가 ‘지배하는 게’ 참 싫다. 015B, 김현철, 유희열의 닭살스런 음악이며, 왕의 남자, 브로크빽, 오만과 편견 같은 영화가 ‘대세가 되는 게’ 참 싫다. 요즘 개봉작들을 보노라면 내용들이 너무 선하다. 이렇게 맑고 티없는 영화들 말고 아베크족들이 손잡고 보러가고 싶지 않은 영화, 스타벅스의 아가씨들에게 화제거리가 안 될 영화들도 많이 개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름대로 공포영화개봉의 러쉬가 있었던, B급 홍콩액션물이 넘실대던 80년대가 그립구나.

귀염둥이 마초들이여, 방구석에서 마우스와 불알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극장으로, 서점으로, 음반가게로 어여 튀어나가자.

태풍태양

천정명, 김강우, 조이진. 다들 너무 멋있다. 카메라의 시선을 보아하니 만든 이는 이 맛나 보이는 청춘들을 한없이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맛있는 청춘, 맛돌이 맛순이들.

미앤유앤에브리원

트렁크 위의 금붕어를 쫒아가던 장면, ))<>(( 의 장면, 오려붙이기와 붙여넣기를 반복하던 꼬마의 음란채팅 장면, 두 소녀의 학습장면, 소녀들이 들이닥치자 뚱보아저씨가 막상 숨어버리는 장면 등이 머리에 남는다.
아, 우스워라. 이 허점 가득한, 위태롭고 보잘 것 없는 세상이라니.

강력3반
드라마가 한회 쉬면서 땜빵으로 해 준 영화. HD방송이고 해서, 극장에서 봤던 예고편이 ‘춤추는 대수사선’의 삘도 났고 해서 얼씨구나하고 봤다.

그냥 수사반장 한편 보는 게 더 나았겠다 싶었다.

에어리어88

대학 친구들 중에 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친구들이 많았다. TV에서 우연히 보고 반해버린, 재방영만을 기다리던 친구들. 다행히 국내에 ‘지옥의 외인부대’라는 제법 쌈박한 이름으로 비디오가 출시되어 있었고 학교 앞 대여점에서 빌려 때때로 동아리방에서 틀어보곤 했었다. 친구를 용병 부대에 팔아넘기고 여자와 권력을 얻는 악역은 우리나라 주말극에서 자주 보던 인물상이었다. 세상에 진입하려는 주인공의 고뇌, 그리고 마지막 그의 결단이 인상 깊었다.

오락실에서 열나게 하던 그 오락이 에어리어88이었다니...

영원과 하루

동숭 아트센터 개관 초기에 상영한 ‘안개속의 풍경’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자욱한 안개 속에서 영감이 터벅터벅 걷기 시작하면서 졸음과의 혈투를 벌였던 기억이 있다. 그때 된통 당하고 이 양반 영화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TV로 녹화해놓은 걸 보는데 30분이 지나자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한다. 미련 없이 꺼버리고 다음날에 다시 보기로 했다. 다음날 퇴근길에 트럭에 붙여놓은 ‘오징어 7마리 만원’의 유혹에 못 이겨 사온 오징어회와 맥주를 영화를 틀어놓은 채 후루룩 짭짭 먹으면서, 밥상을 차리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멀티 플레이를 하고서야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
다 보고나서 5배속으로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는데 저승길 가기 일보직전의 느릿느릿한 영감의 걸음걸이라던가 복창 터지는 대사빨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 영감, 남들보다 5배 느린 속도로 살고 있었구나...’

그렇다. 이 영화가 내게 준 교훈은 짧은 인생, 빨리 걷고 많이 움직이며 살아야 된다는 것. 선문답이나 하면서 허송세월 살고 싶지 않다는 것. 훌륭하다.


4월달엔 TV로 5편, 극장에서 1편, DVD로 2편을 봤구나. 돈 없이 사는 게 표가 팍팍 난다, 나.
by 지루박 | 2006/05/02 16:15 | 울지마 영화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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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5/02 17: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marlowe at 2006/05/02 17:36
[보통 사람들]에서 맏아들은 이순재였죠? 황정순 할머니는 아직 건강하신 지 궁금해지네요.
요즘 영화들은 마지막에 꼭 훈훈한 감동을 넣으려고 해서 싫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반대로 엽기로 나가니...)
Commented by PETER at 2006/05/03 00:00
귀염둥이 마초들이여, 방구석에서 마우스와 불알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극장으로, 서점으로, 음반가게로 어여 튀어나가자.

--->장난아니게 동감이요...!!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도 이 세상은 여자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거 같아요.
스타벅스에서 예쁜척하는 여대생들 셋이서 교태-_-가득한 목소리로 시시껄렁한 얘기하는 모습이 제가 젤 싫어하는 풍경이에요.
Commented by 언더바 at 2006/05/03 00:00
(나중에)--> 운제??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5/03 10:08
비공개님/ 눈물 펑펑...

marlowe님/ 황정순, 돌아가셨단 걸로 알고 있는데...
전 코메디 영화가 중반이후 감동의 샛길로 빠지는걸 아주 혐오합니다. 그 코메디가 욕철갑의 대사빨로 웃기는 영화였을 때 더더욱.

PETER님/ 전 여대생들 재잘대는 모습은 너무 좋아라합니다. PETER님은 아직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젊음을 가지고 계셔서 그런 모습들이 약간 거슬릴지도 모르겠지만 저처럼 늙으면 그 모습들이 그렇게 예쁘게 보일수가 없습니다. 조금 위험해지긴 하지만 횡단보도앞에서 재잘대는 여고생, 여중생들의 모습도, 원츄! PETER님은 빨리 '또래의' 여자친구 만드세요. 늦으면 돈많은 아저씨들한테 아름다운 아가씨들 다 뺏깁니다.

언더바님/ 오늘 밤, 술 안마시고 들어가면 붉은노랑빛의 파일이 떡하니 걸려있을지도 모르겠사옵니다.
Commented at 2006/05/03 11: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6/05/04 15: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5/04 18:42
비공개님/ 그저 눈물만 흘릴 따름입니다. 엉엉.
Commented at 2006/05/05 00: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조나쓰 at 2006/05/05 07:21
후우.... 돈많은 아저씨가 되면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뺏을 수 있는 것이로군요.....
저는 이제 돈만 벌면 되겠는데요..^^v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5/05 16:10
비공개님/ 감동을 안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왠일로 사장께서 '기마이'하셨습니다. 고로 3일연휴... 하지만 어제 발표된 거라 계획을 세우지 못해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어요. 어차피 기마이는 한달에 한번 있는 4째주 토요일의 휴일이 올라왔을뿐..-_-

조나쓰님/ 호호, 아저씨의 조건과 오까네의 조건을 갖추셨다해도 안방마님의 감시망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님 새출발....;;;
Commented by 아임낫네티즌 at 2006/05/07 02:23
왠지..기억과 감상이 새록새록...안개속의 풍경은 포스터 하나만은..그 포스터만 보고 잇어도 잠이 솔솔~쏟아지던 기억이..B급 영화의 시대..가 다시 올까요? 피터잭슨이 반지의 제왕을, 킹콩을 만들고 있는데..이제 좀 유명해 졌으니까, 지금 권력으로 데드 얼라이브나 리메이크 하시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기어다니는 창자...무서운 잔듸깎는 기계..스크린을 다시 피로 물들여주시길..ㅋㅋ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5/08 13:31
요즘은 이블데드나 데드얼라이브같은 쌈박한 호러영화가 잘 안나오더군요.(제가 관심이 없어져서 그런가요..) 가위질로 엉망이 되긴했지만 그 깝깝하던 시절에도 왠만한 호러영화는 거의 개봉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아쿠아리스'는 덜덜덜...
Commented at 2006/05/09 09: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marlowe at 2006/05/09 17:56
황정순 여사는 아직 생존해 계십니다. 요즘이야 여든 살 넘기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5/10 18:18
비공개님/ 전혀 죄송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라는 생각뿐. 흙.

marlowe님/ 헉, 그렇군요. 제가 생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낼 뻔 했습니다. 그 옛날에도 나이가 참 많구나 했었는데 살아계셨군요. 내가 함께 늙어가서 그런지, 아님 오래 사셔서 그런건지...
Commented by 꿈의대화 at 2006/05/11 14:03
사실 전 3월인가 이후로 아직 극장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왜 이럴까요, 요즘엔 제가 저같지 않아요...
Commented by Eternity at 2006/05/11 15:51
↑ 2006년에 아직 극장을 못 가봤습니다 ㅠㅠ 저는 왜 사는걸까요 흑흑

오랜만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지루박형님...그간 별고 없이 잘 지내셨나요 +_+
Commented by 나대로 at 2006/05/11 18:19
태풍태양 잘 만들어진 영화인것 같아요...
사뭇 진지하게 즐기며 봤었습니다...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5/12 00:47
꿈의대화님/ 가수생활에 슬럼프가 온게로군요. 사진집 촬영같은 거 하면서 휴식을 취하심이 어떨런지...
아, 그리고 앨범은 잘 듣고 있습니다. 흠..언젠가 대면할 일이 있으면 리뷰 말씀드리겠습니다.

Eternity님/ 반갑습니다. 은둔생활을 끝내고 하산하셨군요. 저야 뭐, 잘지냈죠.

나대로님/ 너무 예쁜 영화였어요. 재밌게 봤구요. 단, 클릭비 김상혁이 나오는 장면은 왜그리 어색한지.. 그 사람은 뭘해도 어눌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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