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처럼 일정한 지루박의 하루. 그 지루하고 영양가 없는 하루를 정리.
아침을 깨우는 두 종류의 시계.
하나는 몇 년째 동거하고 있는 도라에몽 자명종, 그리고 또 하나는 휴대폰 알람. 거의 동시에 울리면 몇 걸음 걸어가 만질 수 있는 도라에몽 녀석을 진정시키고 휴대폰은 ‘3분 뒤 다시 울림’으로 설정한 후 다시 취침. 3~4번 반복 후에야 겨우 일어나는 ‘안티 아침형 인간’
아침은 꼭 밥을 먹어야 된다는 신념이 있지만 몇 달 전부터 살빼기의 일환으로 주스를 마시고 출근. 생식이나 감자, 토마토, 당근 같은 걸 갈아먹은 지 오래. 한때 꾸준히 먹은 식초도.
아침에 바르는 로션은 랩 시리즈. 딱히 정해서 쓰는 건 없고 선물로 받거나 충동적으로 산 면세점표 로션 종류가 많아서 하나씩 없애가면서 쓰는 편. 지금의 랩시리즈는 기름기가 많은지 얼굴에 여드름 발생.
머리는 아무것도 안바르거나 왁스. 아주 무른 것. 예전에 강한 걸 샀다가 머리가 왕창 빠져버렸음.
아침은 부릉부릉 운전해서 출근. 성인 남자들의 3대 취미라는 자동차에 전혀 관심 없고, 운전하는 것 엄청 싫어하는 편. 회사의 필요에 의해, 그리고 서식지의 특수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지만 만원 지하철과 버스를 항상 그리워함.
2년 전에 누가 찍어버리고 도망간 상처에도 그러려니... 다른 물건과 달리 자동차엔 조금의 상처도 용납 안하는 이 세계의 풍토는 도저히 이해 불능.
집에서 회사까지 정확히 11.9km. 출퇴근 혼잡시 30분, 아닐 땐 25분 코스. 맘먹고 스피드레이서가 되어도 20분내로는 불가능. 장이 안 좋아 아침에 식은땀 흘리며 중간에 내려 화장실 찾는 일 허다.
차안에서 듣는 건 CD. 한때 출근길 ‘김성주’,‘손석희’, 퇴근길 ‘최양락’을 고수했으나 요즘은 무조건 CD. 8장이 들어가는 CD체인저의 지금 라인업은
1. 스웨터 -1st
2. 패퍼톤즈 -1st
3. 연진
4. 코즈니 컴필레이션 앨범 -2nd
5. keane -2nd
6. duran duran -wedding album
7. good night and good luck OST
8. sin city OST
한없이 말랑말랑하고 토할 정도로 달달한 시부야케이쪽이 많은데, 뭐 ‘달릴 때는 역시 시부야다!’라는 생각.
회사도착. 출근시간은 직원들 중 하위권. 홈페이지에 있는 회사 사진. 디자이너 언니께서 잡초까지 그려주셨네.
화장실 청소, 대걸레질, 넝쿨 제거, 잔디깎기 같은 것도 모두 직원들의 몫. 변기에 말라붙은 똥딱지 닦는게 젤 싫어. (사무실 청소해주는 분이 있다면 항상 고마운 생각하고 회사 다니세요. 복에 겨워 투덜거리지 말고. 자주 하는 얘기지만 학교 다닐 땐 공부 열심히 하시구요.)
점심은 공단(工團) 내에 위치한 공동식사구역에서 짬밥 배식.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회사원의 모습은 찾을 수 없는, 공장 유니폼을 입은 아줌마들이나 기름때를 잔뜩 묻힌 작업셔츠 바람의 아저씨들이 주고객. 우아하고 격조 높은 곳에서 브런치를 땡기는 서울의 언니, 오빠들은 기겁할만한 ‘아름다워라, 노동자여’의 광경. 친절하게 반겨주시는 아주머니, 아저씨 고맙긴 한데 철제 식판은 아무래도 비위생적일걸요. 단무지에 고춧가루 바른 것도 그만 만들어주세요. 손이 안가.
이런 깔끔 짬밥이 아니란 말이다.
(아.. 회사 이야기는 더 이상 쓰기 싫어요.)
퇴근길. 오늘은 뭘 했나 싶은 퇴근길.
집에 들어서면 웃는 얼굴로 돌진하는 152cm의 단신가드 와잎후 선수. 차려놓은 반찬에 조금의 비평도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수비도 만점! ‘밥상머리에선 주는 대로 쳐먹는거다’라는게 이 선수의 신념. 하지만 때때로 수비를 뚫고 ‘식사 비평→화산폭발→침묵의 시간→아침밥 생략’의 악순환을 자처할 때도...
겨울엔 집에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 하지만 여름엔 자기 직전에 샤워. 더운 건 참아도 정말 추운 건 못 참겠어.
저녁밥을 먹고 나면 9시 정도. 그 이후엔 TV나 DVD보기, 때론 책보기. 꼭 챙겨보는 프로는 단 두개, ‘주몽’과 ‘그랑프리쇼-불량아빠클럽’. 드라마 챙겨보는 건 도대체 몇 년 만인가.
밤마다 열심히 운동하던 근린공원 운동장이 인조잔디를 깐다고 출입금지. 동네축구 하는데 인조잔디를 왜 깔아주나, 돈이 썩는갑다. 그래서 운동 안한지 석 달째. 런닝머신 엄청 사고 싶어지는 요즘.
자기전의 맥주. 결혼 전 원주에 처음 왔을 때 매일 1.6L의 패트병 맥주를 꼬박꼬박 약처럼 복용. 1년 동안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규칙적 복용. 지금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는 사실. 이제는 와이프가 잘 못 먹게 하지만 가끔 맥주 마시고 자리에 누울 땐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
머리감을 때 쓰는 샴푸는 CJ의 모발력. 숱이 적고 머리카락이 가는 편이라 꽤 신경 쓰이는 부분. 한때 인디언들의 왕숱 비결을 알아냈다는 ‘난다모’도 썼으나 별 무효과.
자기 전에 바르는 건 비오템의 에센스. 인생을 건성으로 살다보니 건성피부. 자기 전에도 항상 뭘 발라줘야 하는 까칠한 피부 녀석.
침대에 눕기 직전에 시원한 우유를 마시는 습관은 유아기 때부터 형성된 인류의 로망. 물론 이건 맥주를 마시지 않았을 때 이야기. 맥주 마신 뒤 우유 마시면 바로 설사.
더위를 못참는다면서도 창문 여는 것 싫어하는 와이프, 더위를 잘 참는다면서도 창문이 닫혀있으면 미쳐버리는 나.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고 슬리핑.
자, 여러분도 이렇게 하루를 정리해 봅시다. 하다보면 은근히 까다로운 자신을 재발견 할 수도 있어요. 부담스런 바톤은 드리지 않겠어요.
이미지는 거의 훔친 겁니다. 삭제요청 있으면 바로 지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