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지난 7월말 EBS에서 이용민 감독의 <살인마>라는 영화를 방영했습니다. 녹화후 오랫동안 숙성상태로 두고 있었는데 곰팡이 쓸기 직전인 최근에야 봤습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밌었습니다. 1965년작이구요, 혹시 청계천 방랑하면서 비디오 테잎 좀 모으신 분들은 <맹진사댁 경사>라는 타이틀 보셨을 겁니다. 같은 감독의 영화입니다.

뿌앙~ 타이틀이 뜹니다. '검은 바탕에 흰글씨가 깔끔하구나, 센스 있네.'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이 영화는 컬러화로 진행되지 않았을 시기의 옛날 흑백영화입니다. '구리구리 흑백영화니깐 잠 좀 오겠는데'라고 단단히 마음먹어야 됩니다.
공간 처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저 텅빈 공간에서 주인공이 카메라를 향해 들어옵니다. 우산을 들고... 밖에 비는 오지 않습니다만, 유비무환의 정신이 투철한 주인공입니다. 오히려 실내에 눈이 오고 있는 것 같지만, 훼손된 필름이 흘리는 눈물일 뿐입니다.
젤 왼쪽이 주인공인 이예춘입니다. 이름이 춘삼월스럽긴 해도 이분이 바로 '부탁해요~'이덕화의 부친입니다. 그리고 간지 콧수염 의사가 남궁원. 몇년전 중후한 모습으로 썬키스트 오렌지 선전할 땐 범접불가의 포스를 풍겼으나 이때는 코메디언 서영춘이나 오십보백봅니다. 제가 볼땐요.
할머니의 손녀 하나가 귀신의 손에 잡혀 납치됩니다. 서구 공포영화에서 자주 보던 창문 납치씬입니다. 열린 창문과 펄럭이는 커튼사이로 손이 쑤욱 나오는, 최근 공포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애들 침대 옆에서 명상(!)하는 엄니. 유심히 보면 애들방 벽지도 신경 썼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무려 꽃무늬예요. 다리오 아르젠토도 아니고, 박찬욱도 아니지만 '벽지 공포'를 시도합니다. 놀라워요.
이 집 할매에게 귀신이 씌인 뒤입니다. 고양이 혼이 씌었는지 잠들어 있는 애들을 할짝할짝 핥기 시작합니다. 저녁을 싱겁게 먹어서 소금기를 보충하고 있어요. 나중에 애들이 아빠에게 이릅니다.
"노망난 할매가 드럽게 내 볼떼기를 얼린 빠빠오 마냥 쪽쪽 빤다구!"
정체가 뽀록난 (할매)귀신이 주인공과 한바탕 결전을 치룹니다. 철기방 모팔모가 개발한 초강법 식칼을 가지고 결투를 벌입니다. 눈썰미 있으신 분은 혹시 아셨을 수도 있는데 이 할머니를 연기하신 분은 전원일기에서 불암형님의 어머니 역할을 했던 정애란 할머니입니다. 무려 40년전이지만 이때도 할머니 역할입니다....
역시 애들방 못지 않게 할매방의 벽지도 화려합니다. 벽지 공포니까요.
귀신의 최후장면입니다. 할매는 번쩍거리는 어설픈 특수효과와 함게 쪼그만 고양이로 변해버립니다. 어이없게 할머니 옷도 따라 작아졌어요. '헐크의 바지는 왜 안찢어지는가'와 같은 모순이네요.
귀신은 떠났지만, 이야기의 절반은 다시 '왜 귀신이 한을 품었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친척동생, 의사, 시어머니의 음모가 있습니다. 저 장면은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밥상씬처럼 보입니다만 아무 상관없습니다.
으허헉, 내눈..내눈이....
시루떡이 붙었잖아....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호러영화의 걸작을 이야기하자면 '깊은밤 갑자기'나 '여곡성'등이 많이 거론되긴 합니다만, 전 이런 걸작이 또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네요. 장난스럽게 쓰긴 했지만 공포감을 주기위한 설정과 도구사용이 시대를 뛰어넘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하튼 한국고전영화들은 볼때마다 놀라게 하는 작품들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좀 더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EBS 홈페이지 제공의 별 도움안되는 줄거리를 전달합니다.

"아내와 금슬이 좋았던 부자 사업가인 주인공(이예춘)은 오래 전에 아내, 애자(도금봉)을 잃는다. 그는 죽은 아내의 먼 친척 여동생 혜숙(이빈화)을 아내로 맞아들여 계모인 어머니와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한 화가(추석양)의 집에서 죽은 아내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화가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날 이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아내의 죽은 시신을 확인했던 의사 박선생(남궁원)이 죽고, 계모 어머니(정애란)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새로운 아내가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되고 그의 자식들도 사라진다. 주인공의 집에 어느 날 이상한 분위기의 여인(나정옥)이 가정부로 들어오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그는 초상화에 숨겨진 진실을 하나씩 밝혀나가는데..."

*
오늘은 나름 하이퀄러티 포스팅...뿌듯.
by 지루박 | 2006/09/07 02:40 | 울지마 영화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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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9/07 07:16
리메이크작인 '목없는 여살인마'를 본지 얼마 안되어 그런지, 저도 녹화만 떠두고 계속 버려두고 있네요. 에휴.
Commented by marlowe at 2006/09/07 09:37
남궁원의 콧수염이 압박이군요.
Commented by 로토 at 2006/09/07 09:45
콧수염~콧수염~
Commented by ironies at 2006/09/07 10:25
아하하.아침부터신문사의살벌한마감시간에눈치보며혼자서..아하하하고웃고말았네요.디테일한코믹터치.완전내스따일이예욧~1 -ㅂ-;;
Commented by 아모이 at 2006/09/07 11:01
훼손된 필름이 흘리는 눈물~ 이라는 표현 너무 좋은데요.ㅎㅎ
Commented by _ at 2006/09/07 11:41
아...이러케 하이퀼러티의 게시물에 함께 웃을 수 있는 나의 하이퀼러티함에 존경과 흠모를 보내면서..
하하하 갑갑한 흑백영화를 이리 재미나게 풀어내시는 지루박 대왕 너므 멋집니다.
벽지공포 ㅡ.ㅡ;;
Commented by eveprim at 2006/09/07 13:33
밤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찾아온 가정부가 온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는 장면에서 저는 감상을 포기해버렸었죠,. 가정부와 할머니의 앙상블이 멋드러진 코미디를 보는 착각을 일으켰었어요. ㅎㅎ
Commented by punctual at 2006/09/07 16:27
밤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찾아온 가정부가 온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는 장면에서 <==저는 이 채널 저채널 보다가 이 장면만 보고 말았습니다...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9/07 17:25
ArborDay님/ 억지스런 진행이 있긴 해도 꽤 재밌습니다. 빨리 보세요.

marlowe님/ 저 시절 영화에 나오는 의사나 실험실 박사들은 대부분 콧수염을 달고 있었죠. 흐흐. 로봇 만화영화들을 봐도 박사들은 대부분 콧수염!

로토님/ 혹시... 로토님도 수염부???

ironies님/ 근무하시는 곳이 신문사인가요? 우워~ 앞으로 포스팅 할 때 조심해야겠습니다. ^^

아모이님/ 저도 쓰고 나서 감탄한 표현입니다. 어제 소주를 한병 마시고 썼더니 의외의 문장이 나왔군요. 후후.

_님/ (김녀사님이시죠?^^) 캄사합니다, 캄사합니다!

eveprim님/ 으하하, 안그래도 그 장면을 와이프랑 같이 보면서 엄청 비웃었습니다. 마지막에 석불상에서 애들이 튀어나오는 장면도 보셨어야 하는데..

punctual님/ 하하, 명장면을 보셨군요. 오히려 행운(!)이십니다.
Commented by 소내기 at 2006/09/07 22:05
오호 오늘 포스팅 아주 양질입니다!
Commented by 무식쟁이비에로 at 2006/09/07 22:15
울 나라 명작이 너무 많아요. 계보가 단절이 되서 그렇지. ebs에서 해주는 것 너무 잼나요. 미국의 필름 느와르 안 부러운 영화도 많고... 김지미 할매의 젊은 시절 보니 너무 팜파탈이라 놀라기도 하고...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9/08 09:06
소내기님/ 격찬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비에로님/ 몇년전부터 한국영화걸작선은 꼭 챙겨볼려고 합니다. TV에서가 아니면 볼수 없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라 놓치기 아쉽죠. 당시 자연미인들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D
Commented by ironies at 2006/09/08 17:56
저는 기자가 아니고, 그래픽 디자이너이기땀시. 기사내용과는 무관하다는..^^;;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9/08 23:49
그래도 그 공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다들 무시무시하다는...^^;;;(땀방울 하나 더!)
Commented by 디케이 at 2006/09/09 10:17
오늘은 나름 하이퀄러티 포스팅...뿌듯 <-- 귀엽습니다 *^^*
Commented by 아임낫네티즌 at 2006/09/09 23:09
아~6,70년대야 말로 한국영화의 시대. 그야말로 아시아의 영화라면 한국영화라고 통하던 시대였다지요. 몇년전 오발탄 DVD를 구입하고나서 그 감상에 뒤따른 충격이란..그건 그렇고..저 우산 든 신사..장면은 흡사 엑소시스트의 신부님 택시에서 내리는 장면 같아요..멋집니다. ^^
Commented by 조나쓰 at 2006/09/10 10:19
옆으로 좌악 퍼진 캡처 사진들이 인상적입니다..
지루박님의 글은 더 인상적이구요~ ^^*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6/09/11 13:11
디케이님/ 요즘은 글의 질을 떠나 컴퓨터앞에 앉아 느긋하게 포스팅할 여유를 가지기 힘드네요. 술을 줄여야겠어요.

아임낫네티즌님/오발탄 저도 사고 싶은것 중에 하난데 예전 아웃케이스가 있던게 요즘 거의 안보이네요. 허접한 킵케이스가 주류가 되어서 구매욕이 떨어지긴했지만 여전히 사고싶은 DVD중 하나입니다.
비단 저 장면만 아니라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이 많죠.

조나쓰님/ 티비가 길다란 편인데다 비율 그대로 방영한다고 위아래 검은 테두리가 두껍게 생기더군요. 좀 많이 길어보이네요.
제가 한 인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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