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영화
여름은 집에서 영화를 보기에 그다지 새콤달콤하지 않은 계절. 집이 고속도로 가까운 곳에 있어 부아아앙 자동차 소음이 심한 관계로 창문을 열어놓는 여름철은 항상 TV 볼륨을 업업업. 게다가 푸두두두하고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거나 피애애앵하고 모기가 귀 주위를 저공비행하면 괴로움이 2배. 역시 여름철은 슬리퍼 지일지일 끌고 쫄래쫄래 극장에 가 시원한 에어콘의 냉기를 느끼며 보는 게 킹왕짱! 하지만 하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현실은 아니니까.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DVD)를 꺼내봤다. 몇 번 보다보니 볼수록 세밀한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볼수록 카메라의 위치가 바닥에 점점 더 깔리는 느낌이다. 햐, 이거, 이렇게 까지 시선이 낮았던가. 감정에 대한 묘사도 새롭다. 부모님에 대한 자식들의 형식적이고 차가운 기운, 눈빛, 손짓을 꼼꼼하게 읽어 나가다 예전엔 무심코 스쳐갔던 장면들에서 새로운 감정을 읽어냈다. 이래서 영화는 여러 번 보라는 거였군.
유니원의 저질리핑판본을 사면 뒷면에 지루박의 꼴같잖은 진지한 해설이 무단 프린팅 되어있다.
발견하고 돈을 뜯어내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후일담이 있다.

판의 미로(DVD)는 너무 기대를 해서 일까, 보는 동안 조금 피곤했다. 다음에 한 번 더 봐야지.

디센트(Theater)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3월말에 꼴데시네마에서 300을 본 게 가장 최근이었구나. 캐리비안해적도, 슈렉3도, 트랜스포머도 그냥 통과하고 평일 자정을 넘는 시간에 힘내어 극장체험. 나머지 영화들이야 집에서 보면 되지만 공포영화는 집안에서 보기에 동거자의 저항이 극심하고, 익숙함과 포근함을 품은 공간인 집이 극장만큼 공포감을 주진 못한다. 역시 호러는 컬트의 향을 머금은 음습한 띠어러에서.
간만에 제대로 공포감을 느껴보려고 갔는데, 결과적으론 실패. 아이쿠, 깜딱이야, 하고 놀라야 할 장면에서는 스스로 긴장을 하고 대비를 하고 있는 나. 그리고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기습 써프라이즈~. 많이 보다보니 흐름을 꾀고 있다. 역시 사람은 경험이란 게 무서운 거다. 나 참 사악해 졌구나, 나 참 때가 많이 묻었구나.
나이를 먹어갈 수록 호러 장르에 흥미 없어지는 건 세상엔 귀신이나 괴물보다 무서운 게 더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왜 수많은 공포물들이 성장에 관한 공포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어떻게 밥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할 때마다 숨이 멎는다.

할인을 이용해 구입한 영웅본색 박스셋(DVD)을 사자마자 이틀 만에 세 편을 전부 돌렸다. 3편은 왜 갑자기 서극이 직접 나서서 만들었어야 했는지 궁금하다. 총과 술, 담배, 선혈로 적당히 비쥬얼을 살리고 의리와 정의 따위의 컨셉으로 아이디어를 살리는 게 갱영화의 도리. 이건 전혀 부끄러워 할 필요 없는 도리. 하지만 팔랑팔랑 날리는 바바리코트 자락에 찔끔거리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베트남에서 짚차를 들이밀었으니 편안할 리가 없지. 게다가 아무런 끈적임도 느낄 수 없는 새끼손가락 약속 같은 세 사람의 밋밋한 관계는 또 뭐람. 역시 샘 패킨파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오우삼과 타란티노 두 사람 뿐.
이 포스터만 보면 난 온몸이 치킨 스킨으로 포장된다

나는 갱스터 장르에 열광하는 부류의 인간. 내가 생각하는 갱영화의 미덕이란 갱 무비엔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질서(딱히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만)가 있다는 점이다. 난닝구에 쩔은 땀내를 풍겨도 좋고, 목욕탕 싸구려 스킨 냄새가 강하게 나도 좋은데 일종의 룰과도 같은 대립과 화합의 공식을 파괴해선 안된다. 마초이즘이 어떠니 하는 건 갱스터 무비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비판이라 생각되는데 의외로 이런 비판이 많은 것도 불만.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엔 사회비판의 욕설만 입에 잔뜩 달고 다니며 육편을 난자하는 괴상한 양아치무비만 양산. 룰이 파멸한 장르는 재미없다.
박물관이 살아있다(DVD 대여)는 조금 유치. 자막이 ‘골목대장 ooo를 뭘로 보고~’같은 철지난 유행어 투성이라 짜증이 물씬. 그래도 玉K. 이런 식의 판타스틱 가족물 좋아합니다.

슈렉2(TV HD)는 제헌절 특집으로 TV에서 하는 걸 봤는데 여전히 fun. 이렇게 잔재미가 많은 애니메이션은 다시 나오기 힘들 듯.

휴가 맞이 영화보기 1탄인 트랜스포머(THEATER)는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보다. 잘 만들었다는 사실은 네,네, 굽신굽신 인정인데 정신이 너무 없고 몰입도 안되니 흥분도 안된다. 아버지가 아들래미 손잡고 가서 느긋한 마음으로 볼만한 영화라던가 나이 40 다 되가는 영감이 흥분하기엔 쪽팔리는 영화랄까. 나 역시 너무 사악해졌어. 도대체 요즘엔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일이 없네.
'억지 일본어 학습'의 토라진 '토라'가 잘 안된다면 '토라'ㄴ스포머를 응용해도 좋다. 호랑이 얼굴.

보고 싶어서 사두었다가 러닝타임의 압박 때문에 몇 년이 지나도 꺼내보지 못했던 간디(DVD)를 꺼내봤다. 역사적으로는 간디의 ‘비폭력주의’에 대해 그다지 좋은 판단이라 생각 않지만 영화는 훌륭하다. 간지쟁이 간디.


이번주 내내 휴간데 놀아주는 사람도 없고 완전 외톨이 모드.
몇몇 인간들을 만나려고 생각은 했는데 여러모로 내 자신도 없고 이래저래 신세한탄 할 것 같아서 관뒀다.
역시 어른의 세계란... 흑흑, 와입후님, 당신의 소중함을 알겠습니다요. 충성.

by 지루박 | 2007/07/31 22:48 | 울지마 영화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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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GamerDash at 2007/07/31 22:57
저는 2일까지 서울에서....
Commented by 류즈이 at 2007/07/31 22:57
트랜스포머... 사실 어떻게 보면 딱히 스토리 없어도 액션 연출과 기술력 만으로도 팔리는 영화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새겨준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7/31 22:58
저 영화 포스터만 아니였더라면, 1탄의 흥행성적이 훨씬 좋았을 텐 데 아쉽습니다.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7/31 23:39
GamerDash님/ 저도 서울에서 빈둥거리고 있습니다...

류즈이님/ 그렇죠. 어쩌면 스토리 만들기에 한계가 온 느낌이 드는 헐리우드의 대세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marlowe님/ 포스터가 약간 80년대 일본 형사물 같죠. 실제로 저 포스터를 일본 로드쇼에서 보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저한텐 너무나 인상깊은 포스터예요..^^

디케이님/ 옥타비아누스를 좋아하신다니 재밌네요. 전 '판의 미로'에 대한 극찬의 이야기만 봤는데 저한텐 그런 감정이 안와서 이상합니다. 그래서 한번 더 볼려구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8/01 03:24
원본도 리핑한 판에, 발췌라고 밝힌 블로그 글에 돈을 주겠냐만은.
그래도 반갑네요. ^^
Commented by 우유차 at 2007/08/01 09:58
서울에서 번개하시지 ㅠㅠ
Commented by A-Typical at 2007/08/01 13:05
라따뚜이 강추
Commented at 2007/08/01 15: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lice at 2007/08/01 17:43
마지막 줄이 제일 인상깊네요.
그래서 휴가가 필요한가요? ㅋㅋ
Commented by breeze at 2007/08/01 19:13
저는 어렸을 때 티브이에서 보던 전설의 고향을 빼고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본 적이 없어요. 이유는..간단해요. "무서워서...-_-" 집에서 혼자 있을때 자꾸만 생각나고 잠 자려고 누웠을 때 생각나고 화장실에서 생각나고... 그런데 '어떻게 밥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할 때마다 숨이 멎는다.' 를 떠올리면 귀신님들을 순식간에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아요.(브라보!) 음..하지만 곧 우울해지는군요. 으아. 말을 괜히 꺼냈나봐요. ; [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8/02 01:19
ArborDay님/ 우연히 저 DVD 껍데기를 보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당장 사버렸잖아요. 히히.
총 4단계의 전화 통화를 거쳤는데 나중에 자포자기.

우유차님/ 저도 우유차님 포함해서 너무너무 뵙고 싶은 분들이 많은데, 번개 때린 주최자가 가난하다는 단점을 안고 출발하는 극빈 행사가 될 것도 같고 제 스타일이 메인진행자라기 보단 보조진행자 스타일이라...^^ 우유차님이 번개 치시면 은근 슬쩍 참석할수 있어요.

A-Typical님/ 안그래도 라따뚜이가 입소문이 좋아서 볼려고 했는데 그냥 하루하루가 막 지나가네요. 내일 다이하드 예매했는데.. 다음주에 원주에서 봐야겠어요.

비공개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내일은 나름 큰 외출이 있어요. 제 장기인 밤새도록 술처먹기~^이번 휴가의 백미죠.^^

alice님/ 가장 큰 힘이 되주는 사람이자 가장 든든한 친구죠. 가끔 성질을 버럭버럭 내는 것만 빼면...........
헤헤. 학교 댕길때 알짱거리던 친구 따위 다 필요 없슴다.

breeze님/ 요즘 제가 고민이 많아서... 읽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투정이 나오네요. 쩝, 걱정입니다요...
Commented by netphobia at 2007/08/03 00:57
저런...개념없는 업체같으니... 아뭏든 지루박님이 유명하시다는 증거군요. 유명 리플러...-_-;
Commented by 닥쓰 at 2007/08/04 13:23
근데 디센트에 골룸은 왜 나오는건가요

(정말궁금)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8/06 00:12
netphobia님/ 유명해서가 아니라 동경이야기로 검색했을때 웹에서도, 블로그에서도 글이 잘 없어요. 아마 표지 해설을 만들어야 되는데 급해서 네이버 검색하다가 걸려든게 제 글이었겠죠.

닥쓰님/ 골룸....어익후... ^^ 골룸은 귀여운 데가 있는데 걔는 좀 징그럽던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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