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강된장&명태조림
우렁강된장

휴가를 보내고 와입후를 처갓집에 갖다놓고 홀로 집으로 돌아온 소년이 있습니다.
와입후님이 없는 하루하루, 집에 오는 길은 너무 힘이 들어 더욱더 지칩니다.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습니다.
좁은 변기위에 몸을 얹었을 때, 우렁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밥해. 와입후 없잖아.’

아뉫, 이 우렁이가 말을....

‘너 이 색희, 혹시 우렁이의 탈을 쓴 우렁 각시가 아니더냐? 니가 미리 밥해 놓았어야 되는 거 아니냐? 무엄하다!!’

버럭하고 대들었더니 우렁이가...

‘미안’

뭐... 이런 씻슈에이션.


그래서 오늘은 우렁이를 잡아먹는 날. 우렁 강된장을 만들어보리라 퇴근길에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트에서 우렁고동을 사고 냉장고에서 유통기한 7월 18일의 두부를 발견하고 굽기 시작합니다. 된장에 들어가는 ‘두부를 미리 굽는다’는 것은 젊은 날로부터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던 '찬별식 강된장 '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굽던 두부를 히떡히떡 뒤집다가 키친 타올에 올려서 기름을 뺍니다. 행주로 기름을 빼면서 행주 실밥이 이빨에 낑기던 ‘찬별식 강된장’의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했습니다.
우렁이들을 먼저 넣었습니다. 요꼬가와 흡충같은 민물병이 두려우니깐 먼저 익히는 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줍니다.
아무것도 없이 익히던 중에 재첩국 냄새의 국물이 저절로 생기면서 보글보글 신음소릴 냅니다. 드디어 요리의 입질이 시작된 겁니다.
참고로 우렁이가 수컷이 많으면 자글자글, 암컷이 많으면 보글보글하고 끓습니다...팔팔올림픽 전영호식 개그입니다.

자, 입질이 오면 부엌휴지위에 올려져 있던 두부들을 그 자리에서 무차별 노컷버전으로 칼질 합니다. 내 입에 처넣고 끝날 요린데 비쥬얼 따위 필요 없습니다.
두부를 넣고 보글보글 뚝배기가 끓으면 사정을 3초 앞 둔 철이가 두루마리 휴지를 찾듯 재빠르게 냉장고문을 열고 된장 한 숟갈, 고추장, 다진 마늘, 파를 집어 던집니다.
된장의 짠맛은 강한데 약간 밋밋한 듯 합니다. 해저 3만리 같은 깊은 맛이 없으니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습니다.
짜자잔~ 끗.
소년은 저넓고 거칠은 세상끝 맛의 바다로 고고씽~


다음 요리는 날아라 명태 조림.


마트안의 네모난 비니루팩 속에서
나와 처음 만난 붉은 명태 알리는
다시 처음처럼 조그만 냄비에 들어가 우리집 식탁위에 올랐습니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7살 명태의 봄을 아직 기억합니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작던 무.
내 두 손 위에서 바람을 피식피식 빼면서 작은 냄비바닥을 가득 채웠습니다
고춧가루를 가득담은 곰돌이와 청양고추가 슬픈 눈으로 날개짓하고
깨끗이 씻은 명태들에 가스불을 쪼이면 따뜻한 그 느낌. 작은 염통이 두근두근 느껴졌었어.
암명태들이 보글보글...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쿠나...
‘이제보니... 당신, 혹시...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그 명태씨 아니었나요...?’
‘아닙니다. 전 차디찬 명태 알리 맞아요..’

굿바이....

알리...
다음 도전자는 바로 너야. 무앙수린..
by 지루박 | 2007/08/09 01:03 | 달려라 일기 | 트랙백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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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ucida at 2007/08/09 01:06
무앙수린??? 요리입니까?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8/09 01:13
^^;;; 별 의미 없는 꼰투선수 이름이었습니다..하하..
Commented by 꿈의대화 at 2007/08/09 01:34
아...지사마에게 장가가고 시푸다.
Commented by 너구리 at 2007/08/09 02:21
혼자먹는 밥상, 푸짐하기도 하여라.
내공이 느껴집니다.
Commented by pink at 2007/08/09 05:23
재밌었습니다. 맛있어보이기도 했구요. :)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8/09 09:13
저도 우렁 넣은 강된장을 좋아합니다. (우렁도 가게에서 판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외로와보이는 곰돌이 꿀통이 반갑네요.
Commented by 마쉬멜로우 at 2007/08/09 09:23
오. 강된장 꼭 참고 하겠습니다. 맛있겠어요. +_+
Commented by 아모이 at 2007/08/09 09:35
故 알리의 맛있는 명복을 빕니다. 푸하하~^ㅂ^
Commented by 리체 at 2007/08/09 09:37
우렁된장 넘 맛있어보여요..저도 집에 가서...-ㅠ-
Commented by 토끼 at 2007/08/09 09:38
맛은 어땠는지..왜 말씀안해주세요?? 강된장 맛나보여요. 아침부터 배곱화라;;
Commented by woodstock at 2007/08/09 09:44
아 너무 재밌어요 몇 개의 노래가 등장한 건가요. 요리도 찬별님 료리보다 훨씬 훌륭하셔요 ㅋ
Commented by 조나쓰 at 2007/08/09 09:52
지루박님, 원츄...^o^
Commented by 앙녀 at 2007/08/09 10:09
존경하옵니다. 울 신랑님도 저 친정에 보내고 혼자 지내봤으면 좋게써요.
애기도 아니고 40살에도 저만 졸졸졸 따라다녀 귀차나요.
이번주에는 꼭 강된장에 도전 해볼래요.
Commented by 석양무사 at 2007/08/09 10:22
으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최고! 짱! 존경해요~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8/09 17:02
꿈의대화님/ 막상 같이 사는 분은 절 별로 안좋아하던데요...

너구리님/ 이상한 요리만 만들다가 요즘은 정상적인(!) 반찬 만들기도 척척 잘해냅니다.

pink님/ 맛있어 보인다니 감사합니다. 으쓱.

marlowe님/ 곰돌이 꿀통을 아시는군요. 저 곰돌이 꿀도 진품, 짝퉁이 있는지 집집마다 곰돌이 얼굴이 다 다르더군요. 궁금.

마쉬멜로우님/ 만들기 쉽습니다. 역시 한국음식은 된장, 고추장, 간장, 마늘로 대강 넣다보면 맛이 얼추 비슷해집니다. 히히.

아모이님/ 추운 곳에서 냉동되어있던 명태 알리 녀석..ㅋㅋ

리체님/ 왠만한 수퍼마켓에 우렁은 다 파니깐 저녁에 꼭 도전해 보세요.

토끼님/ 맛은 어머니나 와입후가 해주는 거랑 얼추 비슷했습니다. 된장이 많이 들어갔는지 좀 짜긴했어요. 하하.

woodstock님/ 오랜 전통과 풍부한 노하우의 찬별님의 료리에 제가 어찌 감히...

조나쓰님/ 아이원츄, 투!

앙녀님/ 전 독립심이 강해선지 숨겨둔 애인이 있어선지 와입후님이 집에 없는 거 아주 좋아합니다. ^^

무사님/ 언제나 부족한 저에게 부끄럽지 않게 용기를 주시는 무사님도 우너츄!
Commented by 우유차 at 2007/08/09 17:52
자격증의 세계로 진출하시는 거에요!! 혼자 다 드셨어요? 흑, 저런 건 정말로 백세주랑 같이 꺾으면 딱인데!(차마 쏘주를 말하지는 못한다)
Commented by 정시퇴근 at 2007/08/10 12:38
지루박식 요리강좌로 책을 내시는게 -_-;; 흐흐 맛있겠습니다. 아웅~!
Commented by sesism at 2007/08/10 12:49
저 우렁 정말 좋아하는데ㅠ 요리의 달인 같아요.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8/10 16:42
우유차님/ 아아닛, 백세주, 쏘주와 저 짭쪼름한 것들의 궁합을 아는 당신은!! ..두둥.
우유차님은 치즈, 피자와 와인파라 생각했었는데..은근히 반가운걸요.

정시퇴근님/ 억지일본어로도 책 내고 요리로도 책을 내면서 재벌작가에 등극 -> 김성모 만화공장 인수-> 배용준 영입 -> 63빌딩 매입 -> 롯데자이언츠인수 -> 영구아트 인수 -> 타임지 세계를 움직이는 10인 선정 -> 부라퀴에 이대호 태우고 북한 방문 -> 노벨평화상수상 -> 지구대표로 화성 외계인과 상호불가침협정 체결...
덕분에 몇분간 공상에 빠질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히히.

sesism님/ 저도 우렁 늠후 좋아해요. 2000원어치사서 반만 넣었는데 다 넣을걸 하고 후회중입니다. 다시 끓이기 귀찮거든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7/08/12 09:08
음 해물요리를 잘 하시는 거 같아요. 저는 우렁각시고 명태고 미끈거려서 다 질색인데...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8/12 22:51
완전소중입니다. 풀도 고기도 해물을 따를수 없어요. 이휘휘.
Commented by 찬별 at 2007/08/13 09:26
질문입니다. 우리 앞집 할매식당에서는 우렁이들이 자글자글도 보글보글도 아니고 바글바굴 끓더라구요. 왜 그런지 혹시 아시나효?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8/13 11:04
암컷과 수컷이 적정비율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암수가 짝을 찾아 끓을때는 빠굴빠굴 또는 바굴바굴 하고 끓습니다. 바굴바굴하고 끓였을 땐 국물이 조금 끈적해질 수도 있으니 주의.
Commented by 카니 at 2007/08/16 00:25
곰돌이가 피눈물을..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8/16 19:11
앗, 그러고보니...
Commented at 2007/08/18 17: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8/19 01:05
좋은 말씀 너무 고마워요! 최강의 가르침입니다.

어젠 제 것만 보구 이웃순례를 못했어요... 헝..
Commented by punctual at 2007/09/03 16:52
무앙수린을 모르시는 분들도 ㄱㅖ시는군요...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9/04 18:29
아무래도 무앙수린을 아는 저희들이 구세대로 부끄러워해야 할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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