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22일<봄 이야기>

설날이다.
전날밤 차가운 외풍을 조금이라도 더 막아보려는 요량으로 빈틈없이 커텐을 치고 잤더니 기상이 훨씬 괴롭다.
찬바람을 피하는 방법일 뿐이었는데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되고 만 것이다.
어젯밤 잠자리에 눕기전에 세웠던 계획, 새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올 한해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한다는 목표 달성은 실패다.

원숭이마냥 온집안을 쫒아다니던 조카들이 코엑스에 공룡을 보러간 큼을 타 브라운관 영화관람을 시도했으나
티브이 리모콘 쥐기 '30년 외길인생'을 걸어오신 아버지가 버티고 계신다.

흠...역시 컴퓨터는 외로운 왕따소년의 친구...


며칠전 피디박스에서 다운받았던 에릭 로메르의 <봄 이야기>를 택했다.
아직은 개봉작이나 예정작들은 피하고 철저히 미개봉작들만 다운받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쯤 이런 철칙이 깨어질지는 스스로도 장담할수가 없다.
통장의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니 그 철칙이 가끔씩 흔들리기도 한다.
이쯤되면 '철칙'이라 말하기가 부끄럽다.

이 영화는 관계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이나 좋아하는 사람들간에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흔히 생기는 오해지만,
그 오해로 인해 내리는 타인에 대한 잘못된 평가는 스스로나 그 상대방에 상처를 주고 소통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인 말이 '객관적으로 말해서...'라고 생각하는데
자신만의 주관이 개입된 상태인 완전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는 범위에서는 누구도 타인의 상황이나 이해를 체험할 수도 없고 함부로 재단할 수도 없다.
세상에 대한 판단은 타인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난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오해에서 오는 이기적인 자신과의 타협으로서의 판단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객의 위치에 있거나 이방인의 위치에 있을때 중립을 지키고 냉철한 평가를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신도 완전히 객관화된 객체가 아니고 환경속에서 관계를 함께 형성해 가는 존재라는 걸 잊는다면 '중립성'이란걸 확보해내기가 쉬운 일은 아닐게다.


거장의 철학적 가르침을 덕담 삼아
새해(난 철저한 음력 지지자다.)를 시작한다.
시작과 생성, 활력의 의미를 갖는 언제나 봄같은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 간만의 진지mode 일기...역시 첫날은 조심스러워...

by 지루박 | 2004/01/23 03:33 | 울지마 영화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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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캉캉 at 2004/01/23 05:27
살아가는 것은 판단과 결정의 과정이라고 생각함.
완전한 객관성이라는 것은 완전한 객관성이 없다는 생각을 가질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됨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4/01/23 17:13
앗!! 캉캉님, 그럼 전 완전한 객관성의 경지에 도달한 거군요!!! 와..고마워요... 이히힣
Commented by bIdOOlGI at 2004/01/23 22:40
그림일기(?) 정말 재밌네요. 그림도 재밌고. 덧글 남겨주신 거 보고 들렀다가 줄줄줄 넘겨가며 재밌게 봤습니다. :)
Commented by 블루브라 at 2004/01/23 23:20
일기를 열심히 쓰는 것 보니 심심한가 보다. 게시판에 들어오는 손님과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나중에 그림 올리는 방법좀 가르쳐 다오.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4/01/24 20:24
하하 bIdOOlGI님 부끄럽습니다.재미있게 봐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부루브라 드디어 블로그의 세계에 입문한거냐? 초생길엔 애로사항이 꽃필것이다. 연락 자주하고 놀아보자구. 이 고민쟁이야.
Commented by finn at 2004/02/03 00:52
에릭 로메르 감독님은 제가 제일 존경하는 싸랑하는 감독님 중 한분! "봄 이야기"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 "여름 이야기"비됴는 어디로 갔는지 알수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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