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일. 곰이 되고 싶어요.

이 애니메이션이 나를 유인케 한 것은 감독이나 제작사의 유명세가 아니라 기법이다. '피리부는 목동'의 수묵화 기법, 프레데릭 벡의 파스텔 기법만큼이나 신비로워 보이는 수채화를 사용한 새로운 표현법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일단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두 마리 곰의 모습은 매우 귀엽다. 대체적으로 서구의 캐릭터들은 동양의 캐릭터들에 비해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거리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코카콜라의 곰, 쿠우의 바다사자와 흡사한 캐릭터들이다.

<곰이 되고 싶어요>는 정글북이나 늑대소년 이야기와 유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가 곰에 의해 길러지면서 곰의 습성을 가지게 되고 원래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면서 내적 외적으로 갈등을 겪고 결론으로 치닫는다.

재미있는 것은 그 결론이다. 사회성을 체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줄 때 흔히 인용되는 늑대소년의 일화가 관습의 중요성과 사회일탈의 위험성을 내재한다면 이 영화 후반부에서 곰소년이 두 세계사이의 갈등상황에서 내리는 결론은 신이 내린 역경조차 이겨내며 자신의 길을 택하는 스스로의 '선택'과 '판단'에 의한 것이다.
(인간인 부모들이 그의 결정을 인정하는 점 또한 흥미롭다.)

사회 부적응자의 폐기 선언과도 같은 '사회성'의 미명 아래에서 집단의 관습을 깨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할 수 없는 규범의 횡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대집단 중심의 사고로 인해 스스로 선택의 권리를 빼앗기며 살아온 건 아닌지, '곰이 되고 싶은' 소년의 당연한 선택이지만 색다르게 느껴지는 자체가 이미 내가 집단화와 몰개성에 매몰되어서가 아닌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왠지 귀에 익숙한 주제 음악이 구슬픈 듯 청량한 느낌을 주고 3D와 절묘하게 혼합된 수채화 영상이 순수함을 도드라지게 하는 애니메이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졌을 때 관객은 초등학생 4명과 '엄마' 한 분.
행색으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난 영락없는 유괴범꼴이다.......서둘러 귀가.
by 지루박 | 2004/02/03 03:44 | 울지마 영화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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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ukie at 2004/02/04 10:57
푸하핫~ 앗...죄송...
전 무슨 그림인가 했는데, 영화 '곰이 되고 싶어요'에 대한 사회성짙은(!) 패러디(?)였군요. ^^
전 아직 못 본 영화인데, 지루박님 글을 읽으니 왠지 늦더라도 챙겨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게 되면 저도 영화감상문을 올리도록 하지요.
참, 저희 집 첫 손님이셨습니다. ^o^ 자주 들르겠습니다.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4/02/04 16:52
헤...사회성짙은 패러디라고 하실 것 까지야.. 자주 들러시겠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곰쓸개에 호스끼우고 먹는 저 사건, 아주 오래된 실제사건인데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Commented by 마그리트 at 2004/02/05 00:33
간만에 뒤집어지게 웃다 갑니다. 감사해요. ^ ^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4/02/05 02:17
마그리트님 네이버에서 오셨군요.(와~ ) 즐겁게 웃다가셨다니 왠지 제가 착한 일을 한 것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히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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